Essay

세월호 1주기의 고해성사

재은초 2023. 8. 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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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17에 작성했던 글입니다아
 

이번 주일에 성당에 다녀왔다.

요즘 이리저리 싱숭생숭한 마음도 다잡고 취업시켜달라고 땡깡도 부릴 겸 거의 한 달 만에야 성당으로 향했다.

불량 신자답게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다가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그제서야 세월호 1주기라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내가 그리고 내 기도가 한없이 철없어 보였다.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학교 앞 새로 생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그날의 메뉴는 치즈밥이었고 우리는 식당 한켠 티비를 보며 희희낙락 밥을 먹었다.

괜찮다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또 바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수업 듣고 아르바이트하고 과제를 하며...

간간히 스마트폰으로 본 인터넷 뉴스에서는 절망적이지만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했다.

침몰한 배에서 살아남은 외국 남자의 이야기도 전해졌고, 누군가는 생존자와 연락이 되었다기에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히 기적은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고 시간은 지나갔다.

 

그 커다랗던 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췄다.

위치를 알려주던 작은 부표물이 없었다면 아무도 모를 만큼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혹시나 생존자가 있지는 않을까 하던 나의 희망은 어느덧 생존자가 있었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어둡고 추운 그곳에서 무섭다고 떨면서도 누군가 구해줄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을 아이들과

그들을 삼키려던 바닷물이 자꾸 상상돼서 차라리 생존자가 없었기를 그리고 고통 없이 편히 잠들었기를 간절히 바랬다.

정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멍하니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다.

 

얼마 전 세월호 이야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졌다.

이모부가 뉴스를 보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나는 듣고 있다가 처음에는 그냥 그들의 상황을 말해주려고 평소와 같이 편하게 말을 시작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둘 다 감정만 상했다.

같이 있던 엄마, 이모들은 이모부의 편을 들었고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된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모부는 자기도 어렸을 때는 너 같은 생각을 했다며 나이가 들면 더 많은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단정했다.

한 순간에 젊은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의미를 상실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기분이 나빠서 격한 말들을 내뱉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감정 조절도 못해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월호 가족들을 지지하면 진보고, 정부를 지지하면 보수라는 어른들의 논리는 여전히 이해가 안됐다.

 

나 역시도 그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곪아들어가는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제발 이 기나긴 싸움도 종지부를 찍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의 아우성을 무시하지는 않았던지 되돌아보기를.....

그리고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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