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33살 방황의 끝에서 (feat. 개발자가 되려는 이유)

재은초 2023. 8. 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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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에 대한 고민 그리고 방황들

 나는 고등학교 때는 예체능을 전공했고, 대학교에서는 무역을 전공한 문과로 개발과는 완전 무관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기획자 겸 마케터로 2년간 일하기도 했었으나 단순 사무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는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전 직장에서 우연히 접한 데이터 분석 업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프로그래밍 학원으로 향했고 6개월의 국비지원 교육 이후 몇 차례 고비를 마주하다가 데이터 분석가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데이터 분석가가 되고 나서 나는 방황에 방황을 거듭했다. 결론적으로 데이터 분석가는 나랑 너무 안 맞았다. 일단 데이터를 다루기에 숫자에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이어야 하는데 태생이 무덤덤한 성격인 나는 숫자로 커뮤니케이션하며 동시에 빈틈없음을 요하는 데이터 분석가의 자격요건 자체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터 분석 직무가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긴 직무이다 보니 업무 범위가 모호한데다가, 결정적으로는 데이터 분석가라는 직무를 뽑는 회사가 적어 이직하기가 까다로운 것도 내가 데이터 분석가 직무를 포기한 결정적 이유기도 했다.

 또한 데이터 분석 직무가 전략 기획 및 컨설팅 쪽이다 보니 고객사나 임원진분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수직적이고 살벌한 것이 나에게는 압박감으로 다가와 더더욱 맞지 않았다. 돈 받고 일하는데 쉽지 않은 건 당연하다지만 그렇게 매일 긴장 속에서 일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무너졌고 결국에는 들어가는 회사마다 번번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나를 좋게 봐준 지인들 덕택에 쉬는 동안에는 마케팅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했지만,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어려서부터 코딩을 취미로 했던 동생의 제안으로 어플을 만들게 되었는데 희한하게도 너무 재미있었다. 매번 무기력의 끝에서 하루하루를 소비했던 나인데 오랜만에 집중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결국 어플 만들기 프로젝트는 허접한 디자인과 우리 남매의 싸움으로 파토가 되긴 했지만 (가족끼리는 같이 일하는 거 아니다...) 눈으로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이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웹 개발 프론트엔드나 앱 개발 쪽으로 커리어 전환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1. 전문성

 영국에 있을 때 개발자이던 동갑내기 친구가 현지 업체로부터 면접 제안을 받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그 친구보다 구직 활동도 열심히 하고 영어도 잘했는데도 나는 회사에 입사를 구걸하는 입장이었고, 개발자 친구는 외국인 헤드헌터들에게 입사를 제안받는 입장이었다. 기술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구직 활동을 하다 보니 더욱더 기술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기회가 된다면 해외 취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기에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도 없으며, 간호사 같은 의료인이 될 만큼 똑똑하거나 희생정신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해서 현지인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지도 않으니 내가 가질 수 있는 기술적 우위는 개발이 유일했다. 다행히도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던 탓에 프로그래밍에 친숙했고, 호기심이 많아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는 자기 주도적인 성향이 개발과 잘 맞았기에 개발자로 커리어 전환을 결심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2. 가능성

 개발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라는 점이다. 생각하는 것을 구현한다는 말처럼 개발자에게 진부하고 식상한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만큼 개발자를 매력적이게 보이는 말도 없다. 또한 프로그래밍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양한 일들에 도전해 볼 수 있으며, 실패하더라도 그것조차 경험이 될 수 있는 너그러운 개발자 문화도 내가 개발자를 매력적으로 느꼈던 요인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려서부터 나는 사업하는 사람들을 동경했고 언젠가는 그들처럼 되는 상상을 했었다. 예체능을 전공하다가 갑자기 수능 공부를 하고 경제학도가 된 이유도 언젠가는 내 사업을 일구고자 하는 뜻이 반영된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공백기에도 간간히 온라인 사업에 도전했던 이유도 회사에서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홀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격 경쟁만으로 남들이 만든 물건에 이익을 붙여 팔아 돈을 버는 건 나에게 흥미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개발자로 온전한 서비스를 만들어 출시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게 내 최종 목표다.

 

33살 방황의 끝에서 느낀 것

 20대 회사 생활들을 겪으며 하나 느낀게 있다. 나라는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성취할 때 가장 성장했다고 느끼며 그것에서 인생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실행되지 못할 때, 특히나 어떤 목표도 없을 때, 가장 무기력하며 무료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도전 과제가 주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개발은 나의 삶의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사실 내가 개발자가 될 지 안될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리고 개발자가 내 마지막 직업이 될지 안될지는 더더욱이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아마도 앞으로 나는 계속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살지 않을까 싶다. 그게 직업이라는 의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업이나 취미로 일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 내 목표는 100세 시대 70살에도 프로그래밍하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간지 난다...)

 누구는 나의 잦은 고민과 방황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자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인생, 내가 가는 방향이 정말 옳은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런 삶은 내가 아닌 남이 주도하는 인생이기에 어느 순간 분명히 허탈한 감정이 들 날이 오더라. 진짜 중요한 건 나를 알아가고 내 자신을 믿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내가 가는 길의 방향성이 정말 옳은지 물어봤을 뿐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나처럼 뒤늦은 방황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건 스스로의 삶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증표라며 응원하고 싶다. (는 사실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 히히) 사실 아무도 나의 고민을 나만큼 고민하는 사람은 없기에 방황과 고민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 나만이 가진 축복이자 권한이니까...

 

Life begins at the end of your comfort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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